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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컴그룹이 운영하는 기업 연수원이 매월 예약제로 일반인에게 무료 개방된다는 사실,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무료인데 얼마나 제대로 관리되겠어?' 싶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다녀와보니 그 의심은 입구에서 이미 무너졌습니다. 가평 설악면 보리산 자락, 청리움의 이야기입니다.
예약방법과 볼거리 — 무료라서 더 의심했던 공간
청리움 예약은 네이버에서 '청리움'을 검색하면 예약 페이지가 바로 나옵니다. '개인 무료 방문 예약'을 선택하면 되는데, 매월 3주 차 월요일 오전 10시에 다음 달 예약이 열립니다. 저는 이 타이밍을 놓쳐서 한 달을 기다렸습니다. 인기가 꽤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방문 당일에는 관리동 1층의 직영 카페 '마루 534'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이용 동의서를 작성합니다. 이때 청리움에서 직접 빚은 막걸리를 웰컴 선물로 줬는데, 무료입장에 선물 까지라니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업 연수원의 운영 방식이 일반 관광지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첫 접점부터 느꼈습니다.
확인을 마치면 차를 타고 산속으로 10분 더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무료 개방 명소'라는 타이틀 때문에 대중교통으로도 편하게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실제로는 자가 차량이 사실상 필수입니다. 걸어서 오면 가파른 산길을 약 50분 걸어야 합니다.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은 곳입니다.
입장 인원이 시간대별로 제한되어 있어 북적임 없이 돌아볼 수 있다는 건 분명한 강점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연못 위 빨간 나룻배, 전통 너와집인 오하산방의 지붕에서 자라는 와송(瓦松) — 와송이란 300년 이상 된 기와 위에서만 자라는 다육성 약용 식물로, 희귀성 때문에 예로부터 귀하게 여겨왔습니다 — 이런 볼거리들을 여유롭게 혼자 담을 수 있다는 건 돈으로도 사기 어려운 경험입니다.
대은당 문을 열었을 때의 경험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약재 창고인 이곳은 문을 여는 순간 진한 약재 향이 코를 강하게 자극합니다. 생전 처음 보는 약재들이 빽빽이 들어찬 모습은 마치 누군가의 비밀 창고에 들어선 느낌이었습니다. 피톤치드(Phytoncide) — 여기서 피톤치드란 식물이 분비하는 천연 항균 물질로, 인체의 면역력 강화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와 한약재 향이 뒤섞인 이 공간의 공기는, 제가 경험한 숲 속 공간 중 가장 농밀했습니다.
청리움 핵심 볼거리 정리
- 오하산방: 너와집 형태의 전통 문화 공간. 지붕 위 와송이 핵심 포인트. 드라마 촬영지로도 이용됨.
- 대은당: 약용 한약재 150여 종 보관 창고. 문을 열자마자 강렬한 약재 향이 공간을 가득 채움.
- 꽁띠 포도밭: 프랑스 로마네 꽁띠 포도밭을 본뜬 공간. 보리산의 큰 일교차 덕에 당도 높은 포도 생산.
- 이제마 약초원: 사상체질(四象體質) 기반 약초 150여 종 조성. 황토길 맨발 걷기 가능. 가장 안쪽에 있어 놓치기 쉬움.
- 자운당과 백록: 연못 위 전통 건물에서 차를 마실 수 있고, 바로 옆에 10만 마리 중 한 마리인 흰 사슴(백록) 관람 가능.
보리산 등산 — "2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말을 검증해봤습니다
청리움은 한 타임당 2시간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2시간이면 전체 코스를 다 볼 수 있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조건부로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청리움 내부만 돌면 2시간이 적당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주차장 옆에 있는 보리산 정상(해발 627m) 등산 코스까지 포함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왕복 약 40분, 직선거리가 아닌 해발 고도 기준으로 165m를 올라야 합니다. 초반은 완만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경사가 급격히 가팔라지고, 짧고 굵게 땀을 빼고 싶은 분들에게는 오히려 그 점이 매력일 수 있습니다. 저는 결국 청리움 내부 관람을 빠르게 마치고 등산까지 강행했는데, 솔직히 이건 좀 촉박했습니다. 등산까지 계획하신다면 내부 코스에서 시간 배분을 의식적으로 조절해야 합니다.
이제마 약초원은 청리움에서 가장 외진 위치에 있습니다. 이제마(李濟馬)의 사상체질 — 사상체질이란 조선 말기 이제마가 체계화한 한의학 이론으로, 인체를 태양·태음·소양·소음 네 가지 체질로 분류해 각각에 맞는 약재와 치료법을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 에 따라 음양오행(陰陽五行) 구분으로 조성된 약초원은 황톳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여름에도 이 황톳길이 시원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가 걸어보니 울창한 수목 덕분에 그늘이 완벽하게 형성되어 있어 납득이 됐습니다. 맨발로 황토 위를 걷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건 출처: Nature Scientific Reports 같은 학술 연구에서도 접지(Earthing) 효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접지(Earthing)란 맨발로 흙이나 풀밭 등 자연 지면에 직접 닿아 지구의 자유 전자를 흡수하는 것으로, 염증 완화와 수면 개선 효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풍수지리(風水地理)적으로 명당이라고 불리는 '백색 혈터'도 직접 가봤습니다. 풍수지리란 땅의 기운과 지형이 인간의 운·건강·번영에 영향을 준다는 동양 전통 사상으로, 백토(白土)가 원형으로 형성된 지대를 명당의 징표로 봅니다. 3번 이상 방문해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어서인지, 직접 적어 매달아 놓은 소원지들이 가득했습니다. 저도 뭔가를 적었는데, 그건 비밀입니다.
보리산 정상에서는 탁 트인 전망보다는 설악산 줄기가 작게 보이는 정도입니다. '정상에서 압도적인 경치'를 기대하고 오르면 다소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오르는 과정 자체, 울창한 수목 사이로 이어지는 산림욕 코스로서의 가치가 더 높다고 느꼈습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수목원과 숲 환경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 수치를 유의미하게 낮추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출처: 산림청). 코르티솔이란 부신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반응 호르몬으로, 수치가 만성적으로 높을 경우 면역력 저하와 수면 장애로 이어집니다. 청리움의 보리산이 단순한 산책 이상의 회복 효과를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청리움 예약은 어떻게 하나요? 경쟁이 심한가요?
A. 네이버에서 '청리움'을 검색한 후 '개인 무료 방문 예약'을 선택하면 됩니다. 매월 3주차 월요일 오전 10시에 다음 달 예약이 열리는데, 무료 명소치고는 꽤 빠르게 마감됩니다. 저는 첫 시도에 실패해서 한 달을 더 기다렸습니다. 오픈 시간에 맞춰 바로 접속하는 걸 권장합니다.
Q.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나요?
A. 일반적으로 무료 개방 명소라면 대중교통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청리움은 사실상 자가 차량이 필수입니다. 관리동에서 내부까지 가파른 산길을 걸어서 오르면 약 50분이 소요되고, 경사가 상당히 급합니다. 서울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입니다.
Q. 2시간 예약으로 보리산 등산까지 가능한가요?
A. 가능하긴 하지만 상당히 빠듯합니다. 청리움 내부 코스만 해도 여유롭게 보려면 1시간 30분 이상 걸리고, 보리산 정상까지 왕복은 별도로 40분이 추가됩니다. 제 경험상 이제마 약초원처럼 안쪽에 있는 곳을 놓치지 않으려면 입구에서 지도를 챙기고 동선을 미리 짜두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Q. 백록(흰 사슴)은 실제로 볼 수 있나요?
A. 네, 자운당 바로 옆에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꽃사슴이 흰색으로 태어나는 백록은 10만 마리 중 한 마리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희귀한 개체입니다. 예로부터 신선이 타는 동물로 여겨졌고, 제주 한라산 백록담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마주쳤을 때 그 존재감이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습니다.
결론
'무료 명소는 대개 관리가 부실하다'는 게 제 선입견이었습니다. 청리움은 그 선입견을 정면으로 깨뜨렸습니다. 황톳길의 마감 수준, 약초원의 구성, 웰컴 막걸리까지 — 이건 기업이 유지하는 공간이기에 가능한 퀄리티입니다. 일반 관광지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종류의 정성이었습니다.
다만 차가 없으면 접근이 어렵고, 2시간이라는 제한 시간은 모든 코스를 욕심 내기엔 부족합니다. 이 두 가지를 인지하고 동선을 미리 짜서 간다면, 청리움은 수도권에서 1시간 거리의 명소 중 손에 꼽을 만한 곳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제마 약초원과 백색 혈터는 지도 없이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코스이니, 반드시 입구에서 지도를 챙겨 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