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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7호선 천왕역에 내리는 순간, 주변이 이렇게까지 걷기 좋은 동네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항동철길에서 시작해 푸른수목원, 구로 올레길까지 이어지는 이 코스는 대중교통 하나로 접근이 가능하면서도 도심 안에 이 정도 밀도의 자연이 남아 있다는 게 제게는 꽤 큰 충격이었습니다.
항동철길: 1959년에 완공된 단선 화물 철도의 현재
제가 직접 걸어봤는데, 항동철길은 흔히 생각하는 '공원화된 폐선로'와는 결이 다릅니다. 경의선 숲길이나 경춘선 숲길처럼 말끔하게 정비된 선형 공원이 아니라, 골목길과 아스팔트가 섞여 있고 철로 양옆으로 주택가가 그냥 붙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단점처럼 보였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생활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폐선의 분위기가 더 진하게 전달되더라고요.
이 철길의 역사는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내 최초의 비료 회사인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 지금의 KG케미컬이 부천 옥길동에 공장을 세우면서 원료와 생산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착공한 4.5km 단선 화물 철도입니다. 여기서 단선(單線)이란 상행과 하행이 하나의 선로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쉽게 말해 기차가 한 방향씩 번갈아 지나가는 구조입니다. 1957년 착공해 1959년 완공했고, 이후 비료 수송은 물론 인근 공장 물류와 군수 물자 운반까지 담당했습니다. 2016년 항동지구 개발 공사를 기점으로 완전히 열차가 멈췄고, 지금은 녹슨 레일과 자갈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천왕역 개통 당시에는 이용객이 너무 적어 서울 지하철역 중 뒤에서 1등을 다투던 역이었다고 합니다. 그게 지금은 항동지구 개발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죠. 3번 출구에서 300m 정도 올라가면 사거리가 나오고,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면 골목길과 함께 철길이 나타납니다. 가로수 그늘 아래를 따라 걸으면서 제 경험상 이 구간은 이른 오전에 걷는 게 훨씬 낫습니다. 오후에는 햇볕이 직접 들어오는 구간이 꽤 되거든요.
- 완공 연도: 1959년 / 총 연장: 4.5km / 형태: 단선 화물 철도
- 운영 주체: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현 KG케미칼) → 이후 군수 물자 수송까지 활용
- 운행 중단 시점: 2016년 항동지구 개발 공사 기점으로 완전 운행 종료
- 서울 3대 폐선 산책로: 경의선 숲길, 경춘선 숲길, 항동철길
- 주의할 점: 일부 구간 아스팔트·골목길 혼재, 정비된 공원형 폐선과 다름
푸른 수목원과 구로 올레길: 데이터로 보는 이 코스의 진짜 매력
철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로 푸른 수목원 정문이 연결됩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 최초의 시립 수목원으로, 약 1,900여 종의 국내외 식물이 자라고 있고 20여 개의 테마 정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출처: 서울시 공원녹지). 제가 직접 돌아봤는데 전체 동선이 대략 3~4km 내외로, 여유 있게 둘러보면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립니다.
수목원의 핵심은 항동저수지입니다. 여기서 항동저수지란 인공 조성된 호수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농업용 수리(水利) 시설로 쓰이던 실제 저수지를 수목원 조성 시 그대로 활용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자연이 먼저 있었고 수목원이 그 주변을 감쌌다고 보면 됩니다. 이 점이 인공 호수가 많은 도심 공원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고, 저도 개인적으로 이 차이가 주는 분위기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는 장미원에서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장미가 일제히 개화합니다. 제 경험상 오전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대에 꽃 색감이 훨씬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같은 공간인데 오후에 다시 돌아봤을 때와 색감 차이가 꽤 납니다. 장미원을 지나면 습지원 데크길이 이어지는데, 이곳은 수생 식물(水生植物)과 습지 식물이 자연 상태 그대로 자라는 구간입니다. 수생 식물이란 물속이나 물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을 통칭하는 말로, 여름철에는 연꽃과 부들 등이 풍성하게 올라와 수면을 덮습니다. 제가 이 코스에서 가장 좋았던 구간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습지원 데크길을 고르겠습니다.
수목원 후문으로 나오면 구로 올레길 산림 2코스로 자연스럽게 진입합니다. 황톳길로 잘 정비되어 있어 맨발 걷기를 즐기시는 분들도 많이 보였는데, 맨발 걷기를 계획하신다면 세족 시설 위치를 미리 확인해 두는 게 좋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세족 시설을 찾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거든요.
숲길 안쪽에는 신영복 선생 추모 공원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한 뒤 1988년 가석방된 인물로,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독자적인 서체인 신영복체를 완성했습니다.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 로고 글씨가 바로 신영복체입니다. 숲 속에서 이 공간과 마주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공간입니다.
성공회대 캠퍼스에는 1936년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가 가족을 위해 지은 별장 건물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후 대한성공회가 매입해 신학 교육에 헌신한 찰스 구딘 신부를 기리며 '구두인관'으로 명명하여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습니다. 한옥의 건축 양식이 반영된 외관이 캠퍼스 안에서 단연 눈에 띄는 포토스폿이기도 합니다(출처: 성공회대학교).
자주 묻는 질문
Q. 항동철길은 지금도 실제로 기차가 다니나요?
A. 2016년 항동지구 개발 공사를 기점으로 열차 운행이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현재는 레일과 자갈이 그대로 남아 있는 폐선 상태이며, 별도의 출입 통제 없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비된 공원형 산책로가 아니라 골목길과 혼재된 구간이 있어 지도 앱을 켜고 이동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Q. 푸른수목원 입장료가 있나요?
A. 무료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립 수목원으로 운영되며 연중 개방되어 있으나, 전시 온실의 경우 운영 시간과 휴관일이 별도로 있으므로 방문 전 서울시 공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장미원은 언제 방문하는 게 가장 좋은가요?
A. 보통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가 개화 절정기입니다. 같은 시기라도 오전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대에 꽃 색감이 훨씬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개화 상태는 기온과 강수량에 따라 해마다 차이가 있어 방문 전 수목원 공식 채널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맨발 걷기를 하려는데 구로 올레길에 세족 시설이 있나요?
A. 황톳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맨발 걷기를 즐기는 분들이 실제로 많습니다. 다만 세족 시설의 위치가 즉시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출발 전 구로구청 공원 담당 부서나 현장 안내판을 통해 위치를 미리 파악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Q. 전체 코스 거리와 소요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A. 천왕역 3번 출구에서 온수역 2번 출구까지 전체 동선은 약 7km 내외입니다. 수목원 내부를 충분히 둘러보고 구로 올레길까지 포함하면 총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를 예상하면 됩니다. 페이스 조절이 가능한 평탄한 코스 위주라 체력 부담은 크지 않습니다.
결론
천왕역에서 온수역까지 이어지는 이 약 7km 코스를 걷고 나서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서울 안에 이런 동선이 남아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항동철길의 1959년 완공 단선 화물 철도가 주는 시간의 질감, 1,900여 종 식물이 자라는 푸른수목원의 밀도, 황톳길 구로 올레길의 정적, 그리고 숲 속 신영복 추모 공원과 유일한 박사 별장 건물까지. 하루 안에 이 모든 층위의 경험을 묶어주는 코스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다만 항동철길 구간의 골목 혼재나 수목원 내 계절별 개화 편차는 방문 전 미리 파악하고 가는 게 훨씬 낫습니다. 무작정 갔다가 장미원이 아직 봉오리 상태라서 실망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거든요. 코스 특성을 알고 가면 기대치를 정확히 맞출 수 있습니다. 다음 방문에는 수목원 메타세쿼이아 길 단풍이 물드는 가을 시즌에 다시 와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