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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다고 아무 코스나 올랐다가 낭패를 본 적, 저도 있습니다. 북한산 비봉능선은 서울 도심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있지만, 만만하게 봤다간 제대로 혼이 납니다. 배우 유해진이 365일 중 300일을 오르내렸다는 이 코스를 직접 걸어보고 나서야, 왜 그가 힘들 때마다 이곳을 찾았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비봉능선,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끝나나
북한산이 서울 안에 있다는 건 알아도, 막상 "어디서 올라가요?"라는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비봉능선의 들머리는 서울 지하철 3호선 불광역 9번 출구입니다. 출구를 나와 200m 직진 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길을 건너고, 250m를 더 걸으면 대호아파트가 나옵니다. 여기서 오른쪽 주택가로 들어가 140m를 오르다 보면 삼환그린파크가 보이는데, 왼쪽 계단을 따라 오르면 바로 등산로가 시작됩니다.
제가 이 들머리를 처음 찾았을 때 생각보다 주택가 안쪽으로 파고들어야 해서 살짝 헷갈렸습니다. 이정표를 꼼꼼히 확인하면서 가는 게 좋습니다. 등산로 초입에서 오른쪽은 북한산 둘레길로 이어지고, 왼쪽으로 가야 첫 번째 봉우리인 족두리봉 방면입니다.
전체 코스는 불광역에서 시작해 족두리봉→향로봉→관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을 거쳐 구기동으로 하산하는 구조입니다. 총 산행 거리는 약 8.9km, 소요 시간은 5시간 안팎입니다. 국립공원공단(출처: 국립공원공단)이 제공하는 탐방로 정보에 따르면 들머리에서 족두리봉까지 구간 난이도는 '어려움'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난이도 '어려움'이란 경사가 가파른 암릉 구간이 연속되어 체력 소모가 크고 낙상 위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북한산은 화강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마사토(화강암이 잘게 부서져 생긴 모래 입자 혼합물)가 등산로 곳곳에 깔려 있어 생각보다 훨씬 미끄럽습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트레킹화로는 확실히 불안했고, 접지력이 좋은 등산화가 필수라는 걸 몸으로 실감했습니다.
- 들머리: 불광역 9번 출구 → 대호아파트 → 삼환그린파크 계단
- 주요 봉우리: 족두리봉 → 향로봉 → 관봉 → 비봉 → 사모바위 → 승가봉 → 문수봉
- 날머리: 구기탐방지원센터 (이후 버스로 불광역·경복궁 방면 연결)
- 총 거리 약 8.9km, 소요 시간 약 5시간
- 등산화 필수, 마사토 구간 많아 트레킹화 미권장
실제로 걸어보니 달랐던 것들 — 난이도와 안전 정보
지도에 적힌 난이도 표기와 실제 체감이 다른 구간이 비봉능선에는 꽤 있습니다. 제가 걸어보니 향로봉 직전 계단 구간이 체감상 가장 힘들었습니다. 족두리봉까지의 가파른 암릉도 숨이 찼지만, 향로봉 우회로가 끝나는 마지막 계단 구간에서는 발이 제대로 떼지지 않을 만큼 다리에 힘이 빠졌습니다. 반면 향로봉 삼거리를 지난 이후 구간은 지도상 '어려움'으로 표기되어 있어도 실제로는 '보통' 수준으로 느껴졌습니다.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 비교적 넓어서입니다.
이 코스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안전 정보가 있습니다. 비봉능선 전반에 걸쳐 쇠 난간이 설치된 암릉 구간이 자주 등장합니다. 여기서 암릉(岩稜)이란 바위로 이루어진 뾰족한 능선 지형을 말하며, 경사가 가파르고 낙석·낙상 위험이 높은 구간입니다. 과거 북한산에서 비가 내린 직후 낙뢰로 인해 쇠줄을 잡고 있던 등산객 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한 이력이 있습니다. 기상 상황이 나쁠 때는 이 코스를 피하는 게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3월 중순에 다녀왔는데도 북사면에는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아이젠(빙판길에서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등산화 밑창에 부착하는 금속 스파이크 장치)은 4월까지도 필요할 수 있으니 배낭에 상시 챙겨 두는 편이 낫습니다. 제 경험상 "설마 눈이 있겠어"라고 방심하고 왔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비봉에서 진흥왕 순수비 복제본을 만나는 것도 이 코스의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진흥왕 순수비란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직접 세운 기념비로, 1816년 추사 김정희가 이끼를 걷어내고 판독하기 전까지 수백 년간 정체가 잊혀 있었습니다. 현재 비봉에 있는 것은 복제본이고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니 그냥 돌덩이가 아니라 1,400년의 시간이 느껴졌습니다.
코스별 실전 팁과 하산 후 식사까지
관봉은 많은 등산객이 그냥 지나치는 봉우리인데, 왼편으로 살짝 들어가면 의상능선 전체와 백운대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펼쳐집니다. 저는 이 포인트를 처음 알게 된 날 15분을 그냥 서서 보다 왔습니다. 따로 표지판이 크게 없어서 놓치기 쉬운데, 향로봉 삼거리를 지나고 나서 왼편 이정표를 의식적으로 살피는 것을 추천합니다.
문수봉 직전에는 두 갈래 길이 나옵니다. 왼쪽은 완만한 우회로, 오른쪽은 쇠 난간을 잡고 급경사 암릉을 직등하는 코스입니다. 제가 예전에 15명을 이끌고 왔을 때 선택권을 줬더니 초보자들을 포함해 전원이 오른쪽 암릉 코스를 골랐습니다. 그 배짱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오르고 나서 모두 뿌듯해했습니다. 스릴도 있고 조망도 훨씬 좋습니다.
하산 후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일몰 이후 구기동 방면 하산로에는 멧돼지가 출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혼자 야간 산행을 하다가 멧돼지를 두 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둘 다 구기동 하산 코스였습니다. 일몰 한 시간 전에는 하산을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안전합니다. 북한산에는 들개 무리도 서식하고 있어 혼자 이동할 때는 눈에 보이는 즉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구기탐방지원센터에서 마을길로 15분 정도 내려가면 버스 정류장이 나옵니다. 산행을 마치고 제가 자주 들르는 곳은 이 근처 단골 닭갈비 전문점 목계정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는데, 닭갈비를 미리 구워서 내오기 때문에 테이블에서 따로 구울 필요가 없고, 1인분도 주문이 가능합니다. 혼자 산행 후 혼밥이 부담스러웠던 분들에게 실질적으로 유용한 선택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북한산 비봉능선 초보자도 갈 수 있나요?
A. 전체 코스를 완주하기에는 체력 부담이 상당합니다. 족두리봉까지 구간이 국립공원 기준 난이도 '어려움'으로 분류될 만큼 가파른 암릉이 이어집니다. 초보자라면 비봉 이후 승가사 방면으로 조기 하산하는 단축 코스를 선택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어느 구간이든 접지력 좋은 등산화 착용은 필수입니다.
Q. 비가 온 다음 날 바로 올라가도 괜찮을까요?
A. 피하는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마사토 구간은 비가 내리고 나면 미끄러움이 배로 심해지고, 쇠 난간 구간에서는 과거에 낙뢰로 인한 사망 사고가 실제로 발생한 이력이 있습니다. 암릉과 쇠줄이 많은 코스 특성상 기상 상황에 특히 민감합니다. 맑은 날, 대기질이 좋은 날에 오르는 것이 안전하고 조망도 훨씬 좋습니다.
Q. 비봉에 있는 비석은 진짜인가요?
A. 현재 비봉에 있는 것은 복제본입니다. 신라 진흥왕이 직접 세운 진품 순수비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816년 추사 김정희가 이 비석의 이끼를 닦아내고 판독하기 전까지 수백 년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돌로 방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Q. 북한산에 들개가 정말 있나요? 위험한가요?
A. 실제로 있습니다. 제가 이번 산행에서도 두 차례 들개 무리를 마주쳤습니다. 대부분은 먹이를 기대하며 접근하는 수준이지만, 떼를 지어 다니는 경우에는 위협적일 수 있습니다. 등산 중 들개와 눈이 마주치면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거리를 벌리는 것이 좋으며, 음식을 주거나 자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비봉능선을 걷고 나서 유해진이 왜 이 산에서 위안을 얻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족두리봉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비봉에서 마주친 1,400년 전 비석, 문수봉 암릉에서 손에 잡힌 차가운 쇠 난간. 그 물리적인 감각들이 쌓이다 보면 머릿속에 꽉 차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는 느낌이 납니다.
다만 이 코스는 분명히 준비가 필요합니다. 접지력 좋은 등산화, 아이젠, 일몰 시간 체크, 기상 확인. 이 네 가지만 챙겨도 비봉능선에서 낭패를 볼 확률은 크게 줄어듭니다. 대도시 한가운데에 이런 산이 있다는 건 생각할수록 굉장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