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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도 이렇게 조용한 동네가 있다는 게 사실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주말마다 인파에 치이다 지쳐 그냥 집에서 쉬는 쪽을 택했던 분이라면, 저도 한때 그랬으니 충분히 공감할 것 같습니다. 5월부터 한 달에 걸쳐 부암동을 직접 여러 번 돌아다니며 느낀 건, 이 동네는 빠르게 둘러보려 하면 오히려 매력이 달아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오늘은 오전부터 저녁까지 실제로 걸어본 하루 동선을 솔직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석파정, 서울 한복판의 비밀 정원
부암동 여정을 오전에 시작한다면 첫 목적지로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꼽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미술관이야 어디나 비슷하지 않나" 싶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서(別墅), 쉽게 말해 본가를 벗어나 따로 마련한 휴식용 거처를 뜻합니다. 조선의 왕 고종이 머물며 휴식을 취했던 곳으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미술관 내부 전시를 관람한 뒤 야외로 나서면 그 정원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이 이곳의 결정적인 차별점입니다. 현대적인 화이트 큐브 전시 공간과 수백 년 된 너럭바위가 불과 몇 걸음 거리에 공존한다는 게 묘하게 어색하면서도 신선했습니다.
정원 깊숙이 들어가면 웅장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너럭바위를 마주합니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자리인데, 저도 바위 앞에 잠시 서서 조용히 빌어봤습니다. 주변 분위기가 워낙 고요해서인지 도심 한복판이라는 감각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부암동 일대가 내려다보이는데, 여름의 짙은 녹음이 성벽 돌담과 어우러지는 풍경은 솔직히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서울에 이런 공간이 있었나" 싶은 반응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직접 가보면 바로 느낍니다. 통합 이용권은 오전 10시부터 매표소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미술관과 정원을 모두 둘러볼 수 있습니다(출처: 석파정 서울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 운영 시간: 오전 10시부터 (매표소 기준)
- 관람 포인트: 현대 미술 전시 → 석파정 야외 정원 → 너럭바위 순서로 동선 구성
- 추천 대상: 역사와 자연을 함께 즐기고 싶은 분, 조용한 오전 산책을 선호하는 분
- 주의 사항: 정원 내 경사 구간이 있어 편한 신발 필수
맘스키친과 카페 희작, 먹고 쉬고 올려다보고
점심은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부암동의 감성이 확 달라집니다. 자극적인 음식보다 정갈하고 담백한 한 끼를 원하는 분들이라면 맘스키친 쪽에 손을 드는 경우가 많은데, 저도 그쪽을 선택했습니다.
맘스키친은 실제 일본인 사장님과 직원분들이 운영하는 일본 가정식 전문점입니다. 가정식(家庭食)이란 말 그대로 일상적인 집밥 스타일의 요리로, 화려한 플레이팅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식을 뜻합니다. 6월부터 9월까지만 맛볼 수 있는 한정 메뉴 히야시츄카를 주문했는데, 히야시츄카란 일본식 냉비빔면으로 새콤달콤한 간장 소스에 오이, 닭가슴살, 토마토 등의 고명을 얹어 차갑게 즐기는 여름 면 요리입니다. 처음 나왔을 때 색감이 예뻐서 먼저 사진부터 찍었는데, 한 젓가락 먹으니 입맛이 단번에 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키마그라탕도 함께 주문했다가 직원분이 자리로 오셔서 "정말 혼자 오셨어요?"라고 물으셨는데, 그 순간 살짝 민망했지만 한 입 먹고 나선 전혀 후회가 없었습니다. 키마그라탕은 다진 고기 카레인 키마(keema) 위에 화이트 소스와 치즈를 얹어 오븐에 구운 음식인데, 층층이 쌓인 소스가 밥과 어우러지면서 깊고 고소한 풍미를 냅니다. 제 경험상 이건 토마토 소스를 선호하는 분들도 충분히 만족할 맛입니다.
식사 후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숨이 차도록 언덕을 올라가면 카페 희작이 선물처럼 나타납니다. 통창 너머로 펼쳐지는 산의 능선과 부암동 일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올라오며 흘린 땀방울이 순식간에 잊혀졌습니다. 이곳의 가장 독특한 구조는 천장에 뚫려 있는 하트 모양의 오프닝입니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설치 미술 작품처럼 기능하는 셈인데, 아이스 라떼를 손에 들고 그 구멍 너머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니 일상의 스트레스가 실제로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뷰 좋은 카페는 어디나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희작은 그 범주에 넣기 어렵다고 봅니다. 뷰보다 공간 자체의 구조가 더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계열사 치킨과 부빙, 여름밤 부암동의 마무리
오후에는 창의문과 윤동주 문학관을 거쳐 청운문학도서관까지 천천히 걷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창의문은 한양도성의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로, 서울에 현존하는 성문 가운데 원형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난 문으로 평가받습니다. 사소문이란 한양도성의 네 개의 작은 문을 통칭하는 말로, 창의문은 그 중 서북쪽 문에 해당합니다(출처: 문화재청). 천장을 올려다보면 붉은 벼슬의 닭 그림이 있는데, 지형이 지네를 닮았다 하여 그 천적인 닭을 그려 넣었다는 풍수지리적 유래가 전해집니다. 600년이 넘은 성문 아래를 통과하는 순간, 묘하게 경건한 기분이 드는 건 저만의 느낌은 아닐 것입니다.
청운문학도서관은 산자락 경사면을 살려 지하는 현대식 서고, 지상은 한옥으로 지은 독특한 복합 구조입니다. 기와 약 3천여 장이 돈의문 뉴타운 재개발로 철거된 옛 한옥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한층 더 다르게 느껴집니다. 정자에 앉아 폭포 소리를 들으며 잠깐 앉아 있으니 산바람과 나무 향이 어우러져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녁은 계열사의 치킨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얇고 바삭한 튀김옷이 특징인데, 두꺼운 튀김옷에 익숙한 분들은 처음엔 "이게 맞나?" 싶을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 한 입 베어 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옛날 통닭 특유의 담백하고 고소한 풍미가 그대로 살아 있고, 간이 과하지 않아 오히려 계속 손이 갑니다. 함께 나오는 감자튀김은 생감자를 통째로 튀긴 포슬포슬한 식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은 부빙의 밀크 카라멜 빙수로 달콤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우유 얼음을 곱게 갈아 만든 빙수 위에 카라멜 소스를 얹고 소금을 살짝 뿌려 먹는 방식인데, 단짠(단맛과 짠맛의 조합)이 극대화되면서 구운 아몬드의 파삭한 식감까지 더해져 한 그릇을 비우고도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재료를 직접 만들어 쓴다는 점에서 시중 프랜차이즈 빙수와는 분명히 다른 결이 느껴졌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부암동은 대중교통으로 가기 불편하지 않나요?
A. 버스를 이용하면 생각보다 접근이 어렵지 않습니다. 경복궁역이나 광화문역에서 버스를 타면 부암동 주민센터 근처까지 연결됩니다. 다만 골목이 많고 경사가 심한 구간이 있어, 자차보다는 편한 신발을 신고 대중교통으로 오는 쪽을 저도 추천합니다. 주차 공간이 협소한 곳이 많아 차로 오시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Q. 맘스키친 히야시츄카는 언제까지 먹을 수 있나요?
A. 6월부터 9월까지만 운영하는 여름 한정 메뉴입니다. "한정 메뉴라고 해서 얼마나 다르겠어" 싶은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계절에 맞게 구성된 재료 조합이 여름 입맛에 꽤 잘 맞았습니다. 방문 전 메뉴 운영 여부를 매장에 확인하고 가시는 편이 좋습니다.
Q. 카페 희작은 주차가 가능한가요?
A. 매장 앞에 주차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자리가 매우 적고 진입 난이도가 높은 편입니다. 희작이 부암동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보니 도보 접근도 어렵지 않고, 오히려 언덕을 걸어 올라가는 과정 자체가 이 카페의 경험을 완성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걸어서 올라간 덕에 도착했을 때 뷰가 더 감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Q. 부빙 빙수는 혼자 방문해도 괜찮나요?
A. 대부분의 메뉴가 1인 상차림으로 구성되어 있어 혼자 방문하기 좋은 구조입니다. 팥빙수, 카라멜 빙수 등 각자 취향대로 주문할 수 있어 혼자 오거나 여럿이 와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평일 오후 시간대가 비교적 여유롭습니다.
결론
부암동을 처음 갔을 때 솔직히 "사람들이 왜 이 동네에 열광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경사 심한 동네 아닌가, 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석파정의 너럭바위 앞에 서는 순간, 카페 희작의 하트 천장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계열사에서 치킨을 먹으며 땀방울을 씻어내는 순간들이 모여 하루가 채워집니다.
빠르게 돌면 놓치는 동네입니다. 그냥 느리게, 좀 숨차게 걷고, 기다리고, 앉아서 바람 맞는 하루를 보내고 싶은 분들께는 부암동이 꽤 잘 맞을 것입니다.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한번 직접 걸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