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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와 사소한 말다툼을 한 날 저녁, 저는 지도 앱을 열고 이름도 생소한 섬 하나를 한참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갈도. 통영 욕지도에서 사선을 빌려 타고 들어가야 닿는 이 섬에는, 지금 단 한 명의 주민이 삽니다. 파도가 마을 전체를 삼킨 뒤 주민 모두 떠나버린 섬에서 4년째 혼자 살아가는 그분을 직접 만나고 나서야, 저는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게 됐습니다.
자발적 고립 — 외로움이 자유가 되는 순간
갈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소리의 밀도였습니다. 파도, 바람, 그리고 그것뿐. 도시에서 늘 배경으로 깔려 있던 엔진 소리나 사람 소리가 없으니, 오히려 귀가 먹먹할 정도였습니다.
이 섬에 4년째 살고 있는 장종수 씨는 "외로움은 자유와 같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좋게 포장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를 같이 보내고 나니 그게 진심이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솔직히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여기서 '자발적 고립(voluntary isolation)'이라는 개념을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발적 고립이란 외부와의 단절을 타인에 의해 강제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피로(social fatigue)에 대한 적극적 회복 전략으로 보기도 합니다. 사회적 피로란 과도한 인간관계와 정보 자극이 반복될 때 누적되는 심리적 소진 상태를 뜻하는데, 장종수 씨의 선택은 그 해소 방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출처: 세계보건기구(WHO) — 정신건강 강화 관련 팩트시트에 따르면, 스트레스와 사회적 과부하는 전 세계적으로 정신건강 악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갈도에서의 삶은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보였습니다.
고독의 자유 — 앞마당은 남해, 뒷마당은 태평양
과거 파출소로 쓰이던 건물을 손수 고쳐 생활공간으로 꾸린 장종수 씨의 집은, 앞마당이 남해고 뒷마당이 태평양입니다. 이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그냥 과장인 줄 알았는데, 직접 서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마신 믹스 커피 한 잔은, 지금껏 마신 어떤 아메리카노보다 더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전기는 태양광 패널로 자체 생산하고, 온수도 섬 안에서 직접 만듭니다. 가스만 육지에서 공수해 옵니다. 이처럼 외부 의존도를 최소화한 삶의 방식을 에너지 자립(energy self-sufficiency)이라고 부릅니다. 에너지 자립이란 외부 공급망 없이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 정도 수준을 개인이 무인도에서 구현했다는 사실이 제게는 꽤 충격이었습니다.
먹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다에서 직접 잡은 해산물이 주식이고, 석 달치 식량을 미리 계획해 놓고 삽니다. 저는 그 꽁치 자반을 얻어먹었는데, 그 단순한 한 끼가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풍족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감사하게 됐던 경험, 저는 그날 처음 해봤습니다.
고독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갈도 생활의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태양광 기반 전력 자급 및 자체 온수 생산으로 외부 의존 최소화
- 직접 조업한 해산물과 사전 계획된 식량 비축으로 식생활 유지
- 폐파출소를 개조한 거주 공간 — 생존 기반 없이 낭만만 있었다면 4년은 불가능했다
- 음악 감상 등 최소한의 문화 활동으로 심리적 균형 유지
무인도 생활 — 폐교가 영화관이 되는 날까지
장종수 씨는 지금 버려진 폐교를 영화관으로 바꾸는 작업 중입니다. 혼자 구조물을 세우고, 기둥을 박고, 바람에 버틸 수 있게 보강하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떻게 혼자 이걸 다 하세요?"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면 못 합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예요."
이 말은 동기 부여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내재적 동기란 외부의 보상이나 강제 없이 행위 자체에서 의미와 만족을 얻는 심리적 추진력을 말합니다. 출처: 미국심리학회(APA) — 동기 관련 자료에서도 내재적 동기가 높을수록 지속성과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를 다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절벽 위 폐초소에 올라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봤을 때, 저는 그 공간이 왜 이 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인지 단번에 이해했습니다. 사방이 바다인 그 자리에서 느끼는 개방감은, 어떤 전망대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종류의 감각이었습니다. 차가운 겨울 바닷물에 몸을 담갔을 때는, 도시에서 몇 달 동안 쌓아온 긴장이 그 순간만큼은 정말 다 씻겨 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 그냥 '힐링'이라는 단어 하나로 처리하기엔 훨씬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감각이었습니다.
백두대간 종주와 히말라야 등반 이후 무인도 생활을 선택했다는 장종수 씨의 이력은, 이 삶이 충동적 도피가 아니라 오랜 자기 탐색의 결론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결론이 지금 갈도 한 귀퉁이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영화관을 짓고, 매일 새벽 일출을 바라보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갈도는 일반인도 방문할 수 있나요?
A. 갈도는 행정 구역상 통영시 소속 섬으로, 욕지도에서 사선(개인 어선)을 섭외해 들어가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정기 여객선 노선이 없기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으며, 이 물리적 장벽이 갈도의 고립감을 그대로 유지시켜 줍니다. 방문을 계획한다면 욕지도 선착장 현지에서 사선 협의가 필요합니다.
Q. 무인도에서 전기와 식수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A. 갈도의 경우 태양광 패널로 전력을 자체 생산하고 온수도 섬 안에서 직접 만듭니다. 가스는 주기적으로 육지에서 공수합니다. 식수는 빗물 수집이나 육지 보급 방식이 병행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처럼 에너지 자립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무인도 장기 거주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Q. 무인도 생활, 실제로 심리적으로 견딜 수 있나요?
A. 자발적 고립과 강제 고립은 심리적으로 전혀 다른 상태입니다. 스스로 선택한 고립은 사회적 피로를 해소하고 내재적 동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가능하려면 고립 이전에 충분한 자기 이해와 생존 기반이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장종수 씨의 경우 수십 년간의 야외 활동 경험이 그 기반이 됐습니다.
Q. 갈도에 원래 몇 명이나 살았나요?
A. 과거 갈도에는 수십 가구 규모의 주민이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후 대형 파도가 마을을 덮치는 피해가 발생한 뒤 주민 전원이 섬을 떠났고, 현재는 장종수 씨가 유일한 거주자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쓰이던 파출소, 경비 초소, 폐교 등 흔적이 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결론
갈도에서 돌아오는 배 위에서, 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대단한 걸 배운 느낌보다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감각이 잠깐 돌아왔다가 다시 멀어지는 기분이랄까요. 쓰레기마저 반갑다고 했던 그분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진짜 자유란 인간관계의 피로에서 벗어나 자연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그날 이후 저는 그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무인도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한 번쯤은 자발적 고립이 어떤 느낌인지, 사회적 피로에서 벗어난 상태가 어떤 감각인지를 몸으로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분명합니다. 통영에서 욕지도로, 욕지도에서 사선으로, 갈도로. 그 불편한 경로가 오히려 이 섬을 지켜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